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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01:15 / Marooned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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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발언들은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6시에 토론을 예고한 진중권에게 달려든 몇은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사실 이전까지의 진중권의 나꼼수에 관한 발언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주진우에 대한 '너절리즘' 공격밖에 없는 듯하다. 당시 진중권은 나꼼수를 제대로 들어본 것 같진 않았고, 단지 기사에서 눈찢어진 아이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제동을 건 것인데, 아마 이때 나꼼수팬들은 적의를 품기 시작한 것 같다.

오늘 토론 이후 진중권은 주진우에 대해 괜찮은 친구라고 평했고, 김용민은 나쁘지 않다고 평했다.
개인적으로 나꼼수 멤버에 대한 생각은 비슷하다. 수많은 이슈거리를 발굴함과 동시에 수많은 고소를 당했지만 거의 패하지 않은 주진우는 그만큼 팩트에 대해 정확하며, 김용민은 분명 말조심을 한다.
김어준은 감성과 직관에 상당부분 의존하며, 정봉주는 인간적인 의리를 제외하면 포퓰리스트에 가까운 듯 하다.

어쨌든 예전 디빠 황빠 사태와 비슷하게, 나꼼수팬들은 진중권 트위터를 습격하기 시작했고,
진중권의 reply들을 보면 서로 다른 이들의 똑같은 주장에 대해 몇번씩이나 입장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있었고,
결국 그도 짜증이 나 명확히 주장의 당위성을 외쳐야 할 필요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담담히 그의 입장을 피력한 경우도 수번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광기를 뿌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쨌든 그런 것이다. 정봉주의 bbk 발언들은 그간 나꼼수가 적중시켰던 큰 건들에 힘입어 대중들에게 다시 회자되었지만, 사실 나꼼수 방송에서 외쳤던 그 증거들은 정황증거에 불과했으며, 가카가 주가조작을 지시했다는 사실에 대해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법원의 판결은 분명 아쉽지만, 그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유죄판결이 완전히 그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 건은 진중권이 유리한 것이다. DDos, 내곡동 등 나꼼수의 업적은 부정하기 힘들며, 그 의혹들이 이미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으며, 이것들에 대한 칭찬(굳이 나꼼수 팬들을 위해 해야 한다면)도 할 법하지만 진중권은 그다지 이에 대한 언급은 잘 하지 않았다. 나꼼수가 옳았던 것들이기 때문에. 대신에 진중권은 나꼼수가 가지고 있는 힘을 인정하며, 대선까지는 같이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으며, 개인적으로는 이 대답에 나꼼수팬들이 수용하고 그만 물러났으면 했다.

어쨌든 진중권은 다시 나꼼수팬들에게 惡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들 일부는 진중권의 의도가, 단지 '이빨' 1인자를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일 뿐이라고 멋대로 곡해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렇게 모자랄까. 개인적으로는 그 나꼼수 팬들이 그들의 진정한 적인 수구세력의 집결지인 정사갤과 노노데모를 하루라도 눈팅해보기를 권장한다. 그러면 그들 일부는 이해할지도 모르지. 진중권의 충고와 오늘 토론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누구의 어떤 공격에서 진보(그 반지성인들까지 포함한다고 해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말이다.
Marooned 이 작성.

아현동의 옛 지명에 있는 외부와 단절된 지하단칸방. 연변 동포 3부자가 살고 있다.
폭압적인 아버지는 그 진의를 알 수 없이 과거의 상황을 반복하는 연극을 매일매일 재연하며, 그 광경은 외부인이 보기에 참으로 기이할 뿐, 대체 어떤 의의가 있는지 알 수 없을 뿐이다.
아비는 어차피 아무 의미도 없는 연기상(욘기상이 정확한 발음이다)을 볼모로 아들들에게 1인 다역을 강요한다.

문제는 그 연극, 연변에서 벌어진 일을 연기하는 연극은 사실과 어긋나 있었다는 것.
누군가가 죽은 결과만이 동일할 뿐, 작은 아들은 어릴 때 본 사실과 그 연극의 나레이션이 어긋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사실 이후 그들은 서울로 도망왔고, 아버지는 바깥 세상에 대한 공포만을 자극하며, 그들이 외부로 나갈 수 없게 통제하고, 연극을 강요하며, 디테일 한 부분만 틀려도 폭언, 협박으로 다른 배우들을 억압한다.

이러한 일상은 어떤 베트남 마트 캐셔가 방을 방문하면서 어긋난다.

연극 소품을 사기 위하여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물품을 사가는 작은 아들에 호감을 느낀 그녀는, 실수로 다른 물품을 들고 왔던 작은 아들을 위해 집을 방문하였고, 외부인을 맞은 적이 없던 큰아들은 극심한 공포를 느끼며 그녀를 적대한다. 아비는 다시 연극을 재개하고, 그녀의 눈엔 이 모든 것이 이상하지만 재미있기도 하다.

이런 모습은 일순간 그녀가 이 암담한 가정의 빛이 될 수도 있겠단 희망을 품게 하지만, 이 외부인 역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다시 아비의 폭압에 굴복하고, 연극의 일부분을 강요당하며 울기 시작한다. 유일하게 소극적이나마 저항하는 것은 둘째 아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진실을 알고 있으며, 외부와의 접촉도 있어 공포심이 덜했던 그는 형에게 도망가자고 말을 하기도 하며, 캐셔를 탈출시키려고 노력하기도 하나, 결국 형에 의해 저지당하며 다시 연극을 재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베트남 캐셔와 작은 아들은 그 억압 속에서 그 둘이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정동진에 가자는 이야기를 하지만, 이 눈물겨운 순간 역시 아비와 큰아들에 의해 제지당하고 연극으로 이어진다.

작은 아들은 아비에게 사건의 진실을 폭로한다. 실제로는 재산상속의 과정에서 아비가 모두를 살인하였지만, 그는 그것을 은폐하고 이 기이한 연극을, 진실을 뒤안길에 두기 위해 시작한 것임을. 아비는 다시 작은 아들을 협박하지만, 큰아들은 그것을 듣고 있었다. 진실을 깨우친 우민.

결국은 작은 아들의 지식 대신 큰아들의 행동력이 그들을 자유케한다. 하지만 자유를 위해서는 대가가 있는 법. 큰아들은 아비를 끝장내며 자신도 희생할 수밖에 없고. 베트남녀는 탈출하고, 남은 것은 작은 아들 뿐. 그 정적의 시간 동안 작은 아들은 밝은 태양 빛 아래 방문을 걸어 잠그며 두 시체 옆에서 다시 자신만의 연극을 시작한다...


라는 것이 줄거리.


연극에 대한 독법이란 것이 있을 수는 없다는 건 잘 안다. 근데 그냥 돌아다니는 기사들 중 가장 흔한 건 인간의 원초성... 삶의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들. 이상하다.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 동아일보. 문화일보. 조선일보. 뿐만이 아니라 경향신문의 그것도 있다. 어째 다 리뷰가 비슷비슷한데, 이게 연극 리뷰가 이런 식으로 뜬구름잡게 해서 개개인의 해석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가? 암튼 동아일보 기자도 극찬했다는데,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자 개인이 아니라 단체의 이름이 가져다주는 부조리 때문일까.

그니까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혹시 나만 정치적으로 이 연극을 이해했나? 싶어서.
혹여나 누군가 정치적으로 여겨서 검색할 때 그냥 공감이라도 얻으려고 말이다. 난 너무나 명백히 정치적으로 이 연극을 봤고, 너무나 공감했다.

집 안에서만 폭압적인 아버지가 딱히 따로 있나? 수많은 나라의 독재자들이다.
그들은 정권을 잡기 위하여 각종 폭력과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질렀지만, 일단 그들의 통치 하엔 그건 쿠테타가 아니라 혁명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걸 영웅화, 혹은 미화하기 위해 각종 재단을 하는데, 이게 외부인들이 보면 무슨 짓을 하는지 이해 안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 국가 안에선 당연한 연극이지만, 외부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거. 결국에는 그 외부인마저 자신에 종속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가상의 적을 제공한다. 연극에서는 집밖의 뼈다귀들이라고 형상화했고, 히틀러는 유태인을, 어떤 국가에서는 종북세력이라는 적들을 만들고 대중을 공포에 떨어 호전적으로 만든다. 사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너무나 미약한 존재들인데 말이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고, 소극적으로 저항하지만, 폭력에 굴복한다. 때론 외국에도 다녀 온 그들은 날개가 꺾여있고, 충분히 용감하거나 목숨을 내걸만큼 적극적이지 못한다.

이 때 민중이 필요하다. 독재자의 폭력과 교육 앞에 진실과 멀어져 있는 존재들. 하지만 힘을 가지고 있다. 각성하게 되면 독재를 무너뜨릴 힘 말이다. 이 때는 전적으로 지식인들이 그들에게 의존하고, 모든 희생은 대중이 치르고, 때로는 그 희생이 가치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 대중의 선택이 그들을 배반했을 때 말이다. 작은 아들은 문을 닫았고, 정동진과 태양빛은 사라져 버렸다.

라고 읽었다. 암튼 커튼콜 땐 굉장한 박수갈채.



오늘 문득 검색해 보니
'이런 좋은 연극에 초대해 주어 감사합니다. 조선닷컴.'
이라는 글을 남긴 사람이 있었다. 이 연극이 좋은 연극인 건 알았나 보다.
조선일보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연극을 보며 같이 울었고, 분개하고, 답답해하였다.
사람들은 이 시대가 여전히 폭력적이라는 것을, 어느새 현실과 분리해서 사고하는 법을 익히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연극을 보고 나와 커피를 한잔 하고, 지하철에 몸을 담고 집에 와 씻고 잠을 잔다.
내일 아침엔 굴레방다리의 소극 리뷰가 있는 동아일보를 펼쳐 보려나? 
그냥 그런 날들.
Marooned 이 작성.

뭐랄까

2011/11/11 10:37 / 분류없음
마음을 좀 편안히 먹어야지 하는 생각
Marooned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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